작년 추석은 교대근무를 하는 내게 있어 모처럼 집에서 연휴를 보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추석을 맞아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다가 집에서 송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할머니 댁과 친척집이 모두 부산인 우리는 딱히 시골이랄 곳도 없고 큰집도 아니기에 딱히 모여서 요리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뭣도 모르고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요리를 하는 그런 분위기가 부러웠다. 혹시 결혼을 하면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길까 싶었지만 시댁 또한 제사 없이 명절을 지낸다고 했다. 어찌 됐건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혼자 도전해본 송편 만들기!
인터넷에서 송편 만들기 키트를 검색해서 주문했다. 마트에서 삼색송편 믹스를 팔기도 했다는데 추석 직전에 주문하려 해서 그랬는지 찾지를 못했다. 단종된 건지는 모르겠다. 쨌든 추석이 다가오면 큰 방앗간에서도 맵쌀가루와 색을 넣을 수 있는 가루들, 그리고 송편 소까지 포함한 키트들을 판매한다. 네이버에서 찾아서 내가 구할 수 없는 색이 포함된 삼색 송편 믹스를 주문했다. 아마 단호박가루와 쑥가루, 백년초 가루가 포함된 키트였던 것 같다. 카카오 캐릭터 모양의 송편을 만들고 싶어서 계핏가루로 갈색 반죽을 만들었고, 백년초 가루를 조금만 섞은 연한 보라색 믹스, 그리고 송편 소를 위해 함께 온 흑임자 혹은 검정깨 가루를 조금 남겨두었다가 반죽에 섞었다. 자연 재료로는 검은색 믹스는 만들기 힘든 건지 거의 대리석 느낌 나는 반죽이 나왔지만 그래도 만족하기로 했다.
반죽 만들기는 의외로 쉬웠다. 송편 믹스에 동봉된 맵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으면 된다. 사실 이 맵쌀 가루 안에 소금 등 간이 되는 재료도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송편을 만들다면 재료들이 모두 포함된 송편 믹스 키트를 사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설명서에서 알려주신 대로 송편소의 재료에 설탕을 섞었는데, 딱 보기에도 반죽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나중에 송편 소만 아주 많이 남았다. 설탕 양을 줄여 조금 덜 달게 먹어도 좋았을 것 같다.
정말 쉬워 보였는데 의외로 만들기 어려웠던 송편들. 설탕이 많이 포함되어 송편소가 고체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수분이 포함된 반죽 안에 넣으니 결국엔 설탕물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만들자마자 바로 쪘어야 하나 싶었는데, 내가 밤에 혼자 조용히 만들고 싶어 혼자 만들고 있던 탓에 바로바로 지지를 못해서 반죽이 마르고 갈라졌다. 위에 물에 적신 면포를 두긴 했지만 갈라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 점이 아쉬웠을 뿐 다른 과정은 재밌었다.
인터넷에서 캡처해둔 예쁜 송편들을 참고하여 만든 송편들. 어릴 적 지점토 공예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옥에서 온 카카오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공예 도구 탓을 해본다.
그래도 나름 카카오 친구들 한 다섯 명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모양이 예쁜 것들은 골라서 성묘하는 데에 가져갔었다. 그래도 파는 송편보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송편이니 조상님들이 먹고 우리 가족을 잘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다.
제일 만들기 쉬웠던 게 조개 모양의 송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왕조개를 많이 양성하게 된 나. 자꾸만 말라서 터지는 송편에 속상해서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또 만들고 싶어 지는 귀여운 송편들.
다음날이 되어 엄마가 송편들을 쪄주셨다. 그냥 반죽이었을 때는 희미했던 색들이 찜통에서 나오니 정말 진해지고 예뻤다. 송편 반죽의 색을 맞출 때는 찐 후에 더 진해지는 것을 참고하여 맞춰야 될 것이다. 그냥 색을 내기 위한 재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색뿐만 아니라 송편의 맛도 좌우했다. 쑥가루를 넣은 송편은 쑥 맛이 났고, 계핏가루는 계피향이 좋았다.
지옥에서 온 카카오 친구들과 그리고 나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본 꽃 송편들. 옥수수 모양과 나뭇잎 모양, 알밤 모양도 있다. 만약 올해 다시 만든다면 송편 모양을 좀 더 크게 만들고, 만든 직후에는 바로바로 쪄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송편소도 좀 더 고소하고 달지 않게 바꿔봐야겠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엄마가 자꾸 우울해하고, 앞으로 명절에 집에 얼마나 더 있겠냐고 서운해하는 게 안타깝다. 결혼이 내 삶을 많이 바꾸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교 걸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아온 엄마에게 결혼은 별일인가 보다. 코로나로 힘든 추석이 될 수도 있지만 올해는 집콕하면서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레시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서 만든 콤부차의 적당한 맛 찾기 (0) | 2020.07.29 |
---|---|
콤부차 스코비 배양 4일차, 콤부차에 대한 오해 (0) | 2020.07.27 |
홍차버섯 스코비 수령 후 본격 콤부차 만드는 방법 (0) | 2020.07.23 |
날씬균의 영양제 콤부차, 콤부차 다이어트를 위한 원더로우 스코비 구입 (0) | 2020.07.22 |
[다이어트 간식 레시피] 무설탕 프로틴 초콜릿 만들기, 다이어트 초콜릿 (0) | 2020.04.12 |
댓글